• 을사늑약 체결 현장 '중명전'
  • 김승현 | 965호 | 2018.09.06 14:51 | 조회 777 | 공감 1


    엄마, 동생과 함께 을사늑약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수 있었어요.

    조약을 체결하는 장면에서는 친일파 대신들이 정말 얄미웠어요.” - 이위연·창도초 3학년

     

    고종황제의 어새(옥새의 높임말)를 직접 찍어본 게 기억에 남아요.

    설명을 들으며 어새를 사용한 당시 고종의 마음을 생각해봤어요.” - 이도연·창도초 2학년


    중명전에서 만난 초등학생들의 말이다.

    중명전은 서울시 중구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오는 조그만 골목에 있다. 이곳은 일제의 무력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로 유명하다.




    안녕하세요. 중명전을 방문한 친구들을 환영합니다. 이곳은 원래 어떤 장소였을까요

    중명전이 언제, 어떻게 복원됐는지 간단한 설명으로 본견적인 해설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해설사의 질문에 학생들은 저마다 개성 넘치는 답변을 내놓았다. 황제의 침실이었을 것 같아요.”, “바로 옆 덕수궁보다 서양 건축물의 느낌이 나는 걸 보면 외국대신(벼슬)들이 머물렀던 호텔일 것 같습니다.”


    중명전은 황실의 서적()과 보물을 보관하던 황제의 서재로 지어졌다. 1904년 덕수궁에 화재가 발생하자 고종은 이곳을 임시 편전(임금이 거처하는 궁전)으로 사용했고,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비열한 얼굴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던 1905, 이곳에서을사늑약이 체결됐습니다.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맺어진 강제 조약이죠. 여러분은 을사늑약에대해 알고 있었나요


    초등학생으로 구성된 프로그램 참가자 중 을사늑약에 대해 알고 있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함께방문한 학부모도 일제와 맺은 불평등조약이라는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을사늑약이 실제로 체결된 장소인 제2 전시실에서 해설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밀랍 인형으로 만들어진 이토 히로부미이완용을 포함한 대신들을 보고 학생들은 이야기를 나눴다.


    저 사람이 이완용이구나. 역시 친일파답게 얼굴도 비열하게 생긴 것 같아. 저런 얼굴을 가진 사람과는 친구도 하지 말아야지.”



      2018 대한민국 특사  


    을사늑약으로 주권을 빼앗긴 고종은 이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학생들은 고종이 보낸 특사(특별한 임무를 띠고 파견하는 사절)의 발자취를 따라 제3 전시실로 이동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대한 제국과 고종황제의 노력이 전시실 곳곳에 녹아있었다.


    고종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미국과 서유럽의 자유주의 국가)에 특사를 파견했어요. 을사

    늑약이 국제법상 무효라는 점과 일본이 대한 제국을 상대로 저지른 잘못된 행동들을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지요.”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학생들은 전시관 시청각 자료를 시청했다. 많은 특사가 그 뜻을 펼치기도 전 일본 군인들에게 잡히고, 가까스로 헤이그(네덜란드)에 도착한 특사들(이상설·이준·이위종)은 회의장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학생들은 자신이 고종의 특사인 것처럼 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저라면 창문을 통해서 몰래 들어가 대한민국의 억울함을 알렸을 거예요. 너무 아쉬워요.”

    모든 설명이 끝나고 학생들은 고종이 사용했던 어새(황제의 도장)를 찍으며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1시간 동안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을사늑약이 어떤 조약이었는지 확실하게 알게됐습니다. 일제가 저지른 잘못된 행동을 잊지 않고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노력한 선조들을 위해 기도할 거예요. 다른 친구들도 이곳을 꼭 방문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승현(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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