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비돼 있으면 ‘빌 게이츠’가 옵니다”
  • 박원배 | 982호 | 2018.11.16 14:04 | 조회 267 | 공감 0



    ▲ 작업을 하다 기자를 만난 김영준 작가. 애널리스트에서 세계적이고,
    독보적인 나전칠기 조형작가로 변신했다.


    강원도 철원의 산골. 엄마가 소중하게 여기는 자개장롱의 영롱한 빛에 빠진 소년이 있었다.

    중학교 때는 미대에 가라는 미술선생님의 진로지도가 있을 정도로 회화 솜씨도 있었다. 하지만 시골 소년에게 미대 진학은 꿈. 춘천에서 고교와 대학을 마친 그는 증권사에 취직했다. 그는 스타 애널리스트가 됐다.

    출판과 방송 출연으로 바빴다. 돈도 벌었다. 하지만 유난히 강한 도전정신과 창의력은 자신에게 내 길이 아니다는 말을 되뇌이게 했다. 세계적인 나전칠기 조형예술가

    김영준 작가는 이렇게 애널리스트에서 나전칠기 조형예술가로 극적인 변신을 했다.





    남들 반대편에 꽃길 있다


    그의 오늘은 주식 격언과 관련이 있다. 그는 증권사에 다닐 때부터 남들의 반대편에 꽃길이 있다는 말 을 무척 좋아했다고 말했다.

    남과 다른 길, 한마디로 창의력과 도전정신이 강조되는 삶이다.

    두 가지는 오늘의 그를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다. 김영준 작가는 빌게이츠, 스티브 잡스, 교황과의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여기에 해외 초대전이 40회가 넘을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의 반열에 올랐다.




    파산직적, 택시 운전으로 생업

     

    그의 예술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김 작가는 애널리스트의 길 을 과감하게 벗어 던졌다. 입사 10 년 만인 1994년의 일이다.

    그의 나이 37. 퇴직 후 곧바로 원하던 일을 하기 위해 친구가 하던 가구공장을 찾았다. 그는 곧바로 나전칠기에 빠졌고, 전국을 다니면서 배웠다.


    그러나 검은색 자개장롱은 더 이 상 시대의 부름을 받지 못한다는 뼈아픈 현실을 만나야 했다.

    더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가구디자인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갔다. 귀국 후 다시 자개장롱에 도전 했다. 전시회도 열었다. 하지만 결과 는 또다시 참패. “아름답지만 집안 인테리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쯤이면 포기할 만도 하겠지만 그는 다시 유학길에 올랐다. 이탈리아 디지인학교인 도무스아카데미에 서 2년 동안 디자인을 배웠다.

    또 일본 가나자와대학교의 옻칠 장인을 찾아 1년 동안 옻칠과 정제 기술을 배웠다. 이를 통해 그는 자개 에서 원하는 색상을 끌어내는 독창 적인 기술을 만들어냈다.


    나전칠기에 빠진 지 7년이 지났지만 길은 안보였어요. 국내외 전시회에 초청을 받는 등 주목을 끌었지 만, 파산 직전이었어요. 먹고 살기위해 택시 운전을 했어요. 하지만 나전 칠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죠.”





    “내 인생 최고의 인연”



    이때 그가 주목한 것이 바로 자개를 이용한 회 화. 장롱에 머물고 있는 자개를 도자기, 회화, 생활용품 등에 접목시키는 것.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길이었다. “회화로 정면 승부하면 승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김 작가는 말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은 그만큼 험하다. 하지만 이 길을 선택함으로써 그는 세계 유일의 나전칠기 조형작가의 타이틀을 갖게 됐다.


    그가 만드는 작품은 세상에 하나뿐이다. 그러다 보니 작품은 수십만 원에서 수억 원을 호가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본 어머니의 자개장롱과 중학 교 선생님이 본 회화의 재능을 결합시켰다. 그가 파산 직전에서 극적으로 회생해 세상에 하나뿐인 나전칠기 조형작가의 타이틀을 갖게 된 데는 극적인 사건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의 인연. 김 작가는 내 인생 최고의 인연이라고 말했다.





    ▲ 빌 게이츠가 의뢰한 ‘X-Box’ 디자인.





    파리에서 ‘은인’을 만나다


    200710, 파리에서 열린 메종앤오브제 박람회에 참가한 김 작가는 파리 고급 호텔인 파크 하얏트에서 로비에서 쇼케이스’(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늦은 저녁, 김 작가에게 한 남자가 와서 4 점의 작품을 구입했다.


    우리 돈으로 5천만 원. 신용카드를 내민 그에게 김 작가는 죄송합니다. 현금 밖에라고 말했다. 지갑을 뒤지던 그 남자는 200만 원만 내고 나머지 는 내일 가져다주겠다고 말했다. 부자들만 머무는 호텔이라 그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다음날 여직원이 나머지 대금을 냈다. 그리고 명함을 주었다. ‘빌 게이츠’. 세계 최고의 부자 바로 그 사람이었다.


    김 작가는 세계 최고의 부자 지갑에는 비상금 밖에 없다는 것을 안 것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작 품을 4점이나 구입해준 특별한 고객의 인연이 끝나리라고 생각했다.


    20083, 그로부터 메일이 날아왔다.

     게임 기 X-박스를 나전 칠기로 장식해 달라는 것. 얼마 뒤 그것이 빌 게이츠가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주는 선물용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나전칠기 작품을 만들어 빌 게이츠에게 선물한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아요.”


    사건작가 김영준의 가치를 세계 최고로 끌어올렸다. 김 작가는 빌 게이츠와 인연이 없었다면 나전칠기 조형 작가 김영준은 없었을 것이 라고 말한다.


    빌 게이츠는 이후 100점의 작품을 추가 주문했고, 그의 소개로 스티브 잡스, 프란체스코 교황이 고객이 됐다. 세계 30여 개 나라의 정상 선물용으로 그의 작품이 제공됐고, 태국 왕실에도 그의 작 품이 빛나고 있다. 되돌아보면 빌 게이츠와 김 작 가는 창의력과 도전정신 등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고 싶은 일 하세요”


    김 작가는 기회가 되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강의를 한다. 그는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하 라고 말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은 힘들지만, 보람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하나 준비를 강조한다.


    작품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그만큼 준비가 돼 있었죠. 그래서 빌 게이츠가 왔고, 그를 통해 일어 설 수 있었어요. 희망은 준비된 사람에게 옵니다.”


    김 작가는 경기도 양평에서 작업 활동을 하고 있다. 소박하게 꾸며진 전시실은 그의 꿈과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김 작가는 취재가 끝난 뒤 앞으로 더 자주 보자. 친구야라고 말했다.


    기자는 그와 고등학교 동기 동창이다. 아주 친하게 지낸. 그래서 그가 더 자랑스럽다.









    박원배(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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