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4.02.22 10:50

밤참으로 ‘냉면’ 사다 드신 임금님

얼마 뒤면 둥근 달이 뜨는 정월 대보름이에요. 달맞이를 가는 어린이 독자도 있을 거예요.

옛사람들도 달구경을 좋아했어요. 순조(조선 제23대 왕)도 비슷한 취미가 있었죠. 평소처럼 달빛을 감상하던 어느 날, 왕은 ‘야식’이 먹고 싶어졌어요.

밤은 이미 깊어 수라간(궁궐 주방) 궁녀들은 거의 잠들 무렵. 그래서 사다 먹기로 했답니다. 이날 메뉴는 냉면! 임금님 몫은 물론이고, 함께 있던 호위 무사들의 것도 다 같이 사 오기로 했어요.

배달 방법은 방문 포장. 호위 무사 몇 사람이 냉면을 나르기 위해 한양(서울) 저잣거리의 가게로 향했습니다. 주문한 음식이 모두 나오자, 무사 중 한 사람은 자기 몫의 돼지고기를 따로 샀어요. 냉면에 곁들여 먹을 생각이었죠.

순조(1790~1834)의 냉면 이야기는 조선 말기 영의정(오늘날 국무총리)을 지낸 이유원(1814~1888)이 쓴 책, 《임하필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순조(1790~1834)의 냉면 이야기는 조선 말기 영의정(오늘날 국무총리)을 지낸 이유원(1814~1888)이 쓴 책, 《임하필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심부름을 마친 이들은 곧 궁궐로 돌아왔어요. 냉면은 여러 그릇인데, 고기는 단 1인분인 상황. 궁금해진 왕은 그 이유를 물어봤어요. 그러자 고기를 사 온 무사가 답했어요.

‘(저의) 냉면에 넣어 먹으려고 합니다.’

무사의 대답을 들은 왕은 말이 없었죠. 냉면을 먹을 시간이 되자, 왕은 이 무사에게 음식을 건네주지 않았어요. 대신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그는 따로 먹을 것(돼지고기)이 있을 것이다.’

이때 순조 임금의 나이는 딱 <어린이 경제신문> 독자 또래인 12~13세. 어린 왕의 눈에는 혼자 먹을 고기만 챙긴 무사가 못마땅하게 보였던 듯해요.

야간에도 열던 식당, 높은 관리도 ‘발걸음’

졍 승디 셰원씨가 이ᄃᆞᆯ 십구일 밤에 관복 입고 슈표다리 쟝국 밥집에 가셔 쟝국 밥 엿량엇치를 사셔 먹ᄂᆞᆫ디 그 때에 다른 사ᄅᆞᆷ들이 쟝국밥을 사 먹으러 그 밥쟝ᄉᆞ 집에 갓다가 졍씨의 관복을 보고 우셧다더라.
- 《독립신문》, 1897년 11월 25일(목), 3면.

약 130년 전 우리나라 신문에 실린 기사예요. 오늘날 쓰는 말로 다듬어보면 이런 뜻이죠.

승지 정세원 씨가 이달 19일 밤에 관복을 입고 수표다리 장국밥집에 가서 국밥 6냥 어치를 사 먹었다. 다른 사람들이 장국밥을 사 먹으러 가게에 갔다가 정 씨의 관복을 보고 울었다.

승지(承旨)는 관직 이름으로, 왕의 비서를 뜻해요. 그만큼 높은 벼슬이죠. 기사 속 ‘밤’이라는 시간대로 추측해 보면 퇴근길에 음식점에 들러 저녁 식사로 국밥을 사 먹은 것으로 보여요.

붉게 표시된 부분이 《독립신문》에 실린 해당 기사다. ‘잡보’란 현재 신문의 사회면을 뜻한다. [자료-국립중앙도서관]
붉게 표시된 부분이 《독립신문》에 실린 해당 기사다. ‘잡보’란 현재 신문의 사회면을 뜻한다. [자료-국립중앙도서관]

눈길을 끄는 점은 조선 후기에는 ‘야간 영업 식당’이 있었다는 사실. 파는 먹거리도 국밥, 냉면으로 오늘날과 비슷해요. 손님도 다양하죠. 앞서 본 순조의 이야기처럼 왕부터 고위 관료, 일반 사람들까지 모두를 넘나들어요.

많은 인원이 오가고, ‘포장 판매’까지 가능했던 이곳은 음식을 어떻게 싸고 내주었을지도 궁금해져요. 여러 가지 특징이 현대와 닮았으니, 혹시 포장 재료도 비슷한 것을 사용했을까요?

한 사람이 버리는 일회용품, 매년 13kg

무사들이 포장해 온 냉면은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 있었을까요? 정 승지가 저녁을 사 먹은 식당에서는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썼을까요? 분명,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거예요.

지난해 환경부가 발표한 ‘전국폐기물통계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버리는 일회용품은 매일 37.32g. 1년으로 계산해 보면 13kg이죠. 이 가운데 절반 가까운 41%는 ‘폐합성수지류’예요. 플라스틱 그릇, 비닐 포장지같이 쉽게 썩지 않는 폐기물입니다. 이런 일회용품 쓰레기가 늘어날수록 환경파괴도 그만큼 심해져요.

올 11월, 부산에서는 ‘플라스틱 종식 국제 협약’ 최종 회의가 열릴 예정이에요. 플라스틱으로 인한 지구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나라가 모여 협약(약속)을 맺는 자리죠. 약속만큼 중요한 것은 실천.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뜻깊은 모임을 계기로, 우리 사회와 국민의 일회용품 줄이기도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김정후 기자


어린이경제신문 12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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